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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은 작업일지 Oh Eun LEE Journal

1월 4일, 월요일
월요일. 9시 30분. 학교 정문. 비. 그치다. Salle Prechter.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해에 나는 이 장소의 이름을 발음할 수 없었고 그 이름을 누군가 입에 올릴 때마다 당혹스러웠다. 그 곳이 맞닿은 거리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라는 걸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미팅. 원탁.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프로젝트의 소개, 학교 부분들 방문, 점심은 취리히 광장 근처의 식당에서 먹었다. 생각해보니 몇년만이다. 테이블의 주 언어는 한글과 영어와 불어이다. 나는 그 언어를 모두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언어의 수준은 각각 다르다. 언어를 알더라도 언어 안의 주제는 알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안다고 한다 해도 차라리 알지 않았으면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언어들은 벌들의 윙윙거림처럼 귀를 스쳐지나간다. 테이블은 가로로 길다. 그 사이에 셋, 넷 혹은 둘의 언어 교환의 중심점이 만들어졌다 사라진다.
오후. 개인 프리젠테이션. 발표라는 단어는 프리젠테이션이라는 단어와 완전히 혼용될 수 없다. 발표라는 단어에는 나는 모모한 작업에 대해 말하겠소, 라는 외부의 대상이 있어 나/주체와 내가 말하는 대상을 갈라놓지만 (대상이야말로 오브제 object이다), 프리젠테이션은 외부의 대상에 대한 발표이자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에 대한 소개라는 뜻도 들어간다. 개인이 집단을 두고 앞에 나와 발표 혹은 소개 혹은 그 둘 다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말하는 대상에 대해서, 그들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사회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고자 귀를 기울인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과 프랑스는 다른 사람들이 아는 버전과는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겹치는 부분은 있을 것이다.

1월 5일, 화요일
프리젠테이션의 연속과 프로그램 제안. 나무, 세라믹, 책, 유리의 네 개의 아뜰리에로 무작위로 선정한 그룹 열 명이 작업 – 아니다, 무엇인가 – 를 해보기로 하였다. 작업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완성된, 무거운, 지나치게 진지한, 해석의 여지 없이 꽁꽁 닫힌 무엇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든다. 그러므로 우리 판을 벌여 무엇인가를 해보자,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을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서 같이 해야한다는 제약은 이 프로젝트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이번주와 다음주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므로.
저녁은 먹지 않고 귀가했다.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아기를 봐야지.

1월 6일, 수요일
책과. 늦었다, 테이블 주위에 이미 몇 명이 앉아있고, 몇몇은 서랍장을 이리 저리 열어보는 중. 주제 : 페이지 / 넘기기 Page / Feuilleter. 나는 겸사겸사 로베르트 발저 Robert Walser 의 마이크로스크립트를 가져오기로 했다. 혹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William Carlos Williams 도. 그는 의사였고 환자와 환자를 보는 사이사이 진료철 구석에 시를 썼다. 나의 원칙은 간단하다 : 평범한 A3 용지 한장을 잘라 3센티 너비 4센티 높이의 수첩으로 만들고 발저의 마이크로스크립트를 본딴 작은 글씨로 그 한 책을 채운다. 처음 책은 8장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첫페이지를 반쯤 채우고 잃어버렸다. 벌칙 : 16페이지를 이번 금요일 저녁까지 채워야 한다. (이하, 이상, 그외의 텍스트들은 이 노트에서 따온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그 수첩이 내 오브제인가? 나의 오브제는 무엇인가? 오브제 하면 일단 예술로서, 대상으로, 현실과 괴리된 어떤 것으로 읽힌다. 그것은 오브제라는 단어가 외래어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방식으로 수입되었고 그 불어 발음 자체로 읽히고 널리 통용되었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오브제는 그 발음 그대로 등재되어있다. « 미술용어로서,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작품에 쓴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상징, 몽환, 괴기적 효과를 얻기 위해 돌, 나뭇조각, 차바퀴, 머리털 따위를 쓴다. 비슷한 말로는 어셈블리지가 있다. »
오후. 익현씨와 함께 장보러 갔다. 맥주, 커피, 필터, 사탕, 군것질거리 기타등등. 우리 아틀리에의 올 한해 예산은 500유로다. 주영선생님이 들으시더니 풋하고 웃으셨다. 책과에서 150유로를 내고 유리과에서 150유로를 내서 다음주에 먹을 것들을 사다두기로 했다. 남서울 선생님들과 짧게 미팅. 파스텔이 불어로 뭐더라 생각하다보니 그게 파스텔이더라. 외래어와 나의 관계.
17시. 그룹별 10분, 10개그룹이 각각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한 그룹은 3명, 한/한/불 혹은 한/불/불.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아이디어가 여럿 나왔다. 무엇보다도, 그룹 내부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 (혹은 그 의사소통의 불가능)이 제일 흥미로웠다. 비언어적 요소로도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작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한 언어 그룹이 한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방식과 다른 언어그룹이 같은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그들이 이 언어 사이에서 불만을 더 많이 느끼는지 혹은 매혹되는지가 흥미롭다. (자멘호프는 에스페란토어를 발명하며 다른 언어 사이에서 소통할 수 없는 갈등을 국제어로 풀기를 바랬다. 모든 의사소통이 무리없이 이루어지면 인류는 행복해지리라고. 지금 국제어의 위상은 영어가 차지하고 있다. 그럼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며 갈등이 없는가? 이건 아주 단순화시킨 도식이지만 더 생각해 볼 것.)

1월 7일
아침. 그리 넓지 않은 아틀리에는 금방 찼다. 영상을 자를만한 다른 컴퓨터가 아틀리에 비디오를 제외하면 없는 탓이다. 동일한 프로그램의 다른 두 언어 사이에서 혼란이 오는 것을 본다. 대충 대충 그 언어 사이에서 기웃거리던 이미지들이 FLV와 MP4와 무압축 포맷 Avi와 퀵타임 사이에서 그래도 무엇인가가 되어간다.
오후 4시 반. 시릴이 세미나를 시작했다. 전날 급하게 영어 텍스트를 받고 한글로 번역했다. 불어였으면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세미나는 간결했지만 (간결해지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였지만) 동시에 우리가 워크샵 전 준비하며 나누었던 많은 질문들이 그 안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단어에 대해. 오브제가 외래어기때문에, 우리는 오브제가 영어로 오브젝트, 즉 대상, 다시 말해 주체와 반대로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자주 잊는다. 몇 가지 키워드.
나는 « 오브제 »라고 생각할 때 딱 떠오르는 걸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objet filmique, 영화적 오브제라고 말을 하면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렇다고 육체를 내 작업의 대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지만 오브제 활성화라는 인공적인 두 단어에는, 다행히도, 늘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꽃병(오브제)이나 그것을 깨트리는 사람(활성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겉표지가 열리지 않은 책이나, 흘러가지 않은 시간은 그 자체로서 활성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12월인가에 액세서리라는 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세노그라프들 쪽은 비스콘티의 영화를 예로 들며 액세서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루치아노 비스콘티는 영화를 촬영할 때 누구도 열어보지 않는 책상 서랍 안에도 보석을 가득 채워야 했다.) 오브제 과 학생들은 그 용어에 불만을 이야기했다.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과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 차이인가. 당연하다, 액세서리는 말 그대로 주체에 딸려가는 소품, 도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도구라는 단어는 주체에 비해 사소하다. 크리스티앙 리쪼의 작업 백프로 폴리에스터, 춤추는 오브제 넘버… 100% polyester, objet dansant n°( à définir) http://www.lassociationfragile.com/christian-rizzo/choregraphe/spectacles_eng/christian-rizzo-choregraphe-spectacles.php?id=1 : 그건 오브제 (걸치는 옷으로서)와 몸의 관계를 바꿔놓는다. 선풍기와 옷과 조명이 만드는 땐-쓰-. 혹은 고전이지만, 맥라렌의 의자 애니메이션. 앉으려면 반항하고, 결국 의자에 앉으려는 사람과 의자의 관계가 바뀌는 것.

1월 8일
전시가 만들어진다. 영상 export가 안되서 그냥 편집툴에서 전체화면으로 띄워놓고 할 지언정, 매우 괜찮다. 짝짝짝.
애니메이션에 대한 소고 : 애니메이션은 그리스어 아니마에서 유래했다. 그 뜻은 삶, 숨, 그런 것이다. 즉 애니메이션은 숨을 주는 행위, 골렘에게 숨을 불어넣고, 무생물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이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나의 애증의 대상 네이버 국어사전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 [명사] <연영> 만화나 인형을 이용하여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촬영한 영화. 또는 그 영화를 만드는 기술. »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즉, 이 말이 얘기하는 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그들 – 오브제라고 부를 수 있겠지? – 은 살아있지 않다는 얘기다. (단 반례는 들 수 있다. 픽실레이션, 그러니까 살아있는 사람의 동작을 프레임 별로 찍어내는 방식이다. 풀밭을 깡총거리며 찍고 마치 그걸 공중부양을 하는 것 같은 GIF로 만든다든가.) 살아있지 않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된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있지 않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것의 정의는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아닐 것이다. 아니라면… 내 앞에 있는 저 단순한 대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건 살아있는 건가? (오브제/대상이 주체가 되는 것인가?) 피슐리와 바이스 FISCHLI & WEISS 의 « 사물들이 가는 방식 The way things go »은 코미디같지만 좀 섬찟한 부분도 있다. 모든것은 파괴된다… 아니 파괴한다. (주체가 누군가?) 아니면, 퀘이 형제들 QUAY BROTHERS 의 작업은 어떤가? 움하임리히, 두려운 낯섬을 그대로 구현한 것 같은 악어의 거리 – Street Of Crocodiles는?

 

Une semaine passée comme si c’ét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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